경계의 공간에서 인사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람들은 경계를 창조의 원천으로 바꾸었습니다.”
경계에 대해 경계심을 지닌 이들에게 도넛경제학으로 유명한 영국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18년 TED 강연에서 모차르트의 5옥타브 피아노와 지미 헨드릭스의 6줄 기타, 세레나 윌리엄스의 테니스 코트 등 세상을 놀라게 한 창조적 변화들이 경계 안에서 잠재력이 발휘되어 일어났다고 말했다. 레이워스의 한 마디는 경계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한다. 경계를 선이 아닌, 공간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 경계공간은 무궁무진하다.
경계의 중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경계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단선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가 자주 만나는 경계는 필사적으로 ‘국경’을 넘는 난민과 지구 위험 ‘한계선’을 넘어서는 파괴적인 인간활동과 같이 ‘선’의 이미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계를 넘어서면 본능적으로 큰일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서가 망가지고, 안정적인 삶이 위험해질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경계를 해체하거나 초월하는 ‘탈경계’를 부르짖곤 했다.
그러나 경계를 ‘선’이 아닌 ‘공간’으로 사유한다면, 안과 밖의 구분선이 아닌 공간을 갖는 중간지대로 사유한다면 우리는 경계를 둘러싼 새로운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현상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외면하고, 경계의 ’선’으로 몰아세우던 것들일 수 있다. 경계의 안과 밖, 흑과 백 중에서 반드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암묵적인 룰 속에서 배제되었던 현상과 존재들 말이다. 경계공간에는 이 무궁무진한 가능성들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양쪽의 특성을 모두 지녀 모순되는 동시에 혼종적이며, 아예 전혀 새로운 제3의 무언가를 탄생시킬 가능성 말이다. 이 가능성을 지닌 경계공간은 레이워스가 말한 것처럼 잠재력이 발휘되는 창조의 원천이 될 수도, 전 인류가 안전하고 공정하게 가동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공간으로서의 경계는 더 이상 탈피하거나 파괴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경계를 공간으로 상상한다고 해서 경계가 결코 편한 장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경계는 여전히 애매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경계의 무궁무진함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정착하거나 정의되지 않은 채, 표류하며 얽히는 성질을 동시에 의미한다. 하나의 가치와 느낌으로 단정짓거나 고정하지 못하거나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경계의 본질일지 모른다. 경계가 섣불리 부정될 수도, 긍정될 수도 없는 이유이다. 경계를 쉽사리 파괴하고, 넘어설 수 없는 이유이다. 경계는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이 아슬아슬함은 지나친 유동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연재의 시작 테마를 ‘경계’로 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무엇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함을, 그렇기에 무궁무진한 소리를 내는 무모함을, 이 불안정한 자유를 간직하기 위해서. 경계의 공간이 되고자 하는 일종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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