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디킨슨이 이야기하는 침묵이란 갑자기 소리가 나면 세상을 소스라치게 하는, 침묵의 전과 후를 극명하게 가르는 침묵으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드라마틱한 침묵이 지구에 없다는 건 지구의 작용에 갑작스럽고, 극명한 변화는 없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구는 늘 그렇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올 여름 우리가 맞이한 전례 없는 더위도, 홍수나 가뭄도, 심지어 절기에 따른 계절의 전환도, 지구의 체계 안에서는 모두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독립적인 흐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 일어난 활동들과 이 활동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나타나야 하는 일이었다. 이 활동에는 수년간의 인류의 행동을 비롯하여 이 행성에 살아가는 모든 구성원의 활동이 포괄된다. 오늘날의 우리가 마주한 것은 침묵한 채, 정지된 공간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이 아니라, 여러 화음과 불협화음이 공존하는 오래된 소리의 공명이다. 이 소리는 청자에 의해 들리든, 들리지 않든 산발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포착되어야 한다는 의무나 간절함 없이 언제까지나 흘러나올 것이다.